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 내가 마속이다/등장인물 (문단 편집) === 군부 === * '''[[장합]]''' 위나라의 장수이자 [[오자양장]] 중 하나로 꼽히는 명장. 옹주를 공격하는 제갈량을 막기 위해 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가정을 돌파하기 위해 진군한다. 가정이 좁기는 했지만 있는 것이라곤 낡은 토성과 산뿐이고, 마속의 병력은 겨우 7천여명이라서 어느 정도 시간은 들더라도 원 역사대로면 못 이길 싸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 역사에서는 마속이 산에 올랐다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지만, 미래인이 빙의된 마속이 산에서 내려왔고 왕평이 지휘를 맡아 악착같이 버티면서 시간을 지나치게 소모했으며, 화공이 실패하고 곽회에게 요청한 원군까지 패퇴하면서, 결국 제갈량이 보낸 촉의 원군까지 오자 후퇴한다. 이후 동관 전투에서 가정에서 자신을 패배시킨 마속을 보고 복수심에 이를 갈면서 그를 반드시 죽이려 했지만[* 개인적인 복수심도 있었지만 그 역시도 가정에서의 패전이 장안의 위기를 가져온 흐름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 가정에서의 패전을 안겨준 장본인인 마속을 죽이려 했던 것.] 위연에 의해 제지되고 위연과 서로 상대방에게 무기를 찔러넣어 함께 전사한다. 사실 어찌보면 위연 못지 않게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으로 자신이 조조 시절부터 싸워온 1세대 무장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로 인해 자신을 패배시킨 마속에게 이를 갈고 달려들었으며 결국 위연을 잡았지만 자신 역시 죽게 되었으니[* 둘의 실력은 비슷했지만 둘 모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 탓에 상대를 가볍게 여겨 간단히 이길 줄 알았다.] 사실상 둘다 그 끝없는 자신감이 둘 모두를 죽게 만든 셈. 다만 각 군에서의 위상의 차이 때문에 촉군은 위연이 죽고도 오히려 더욱 불타올랐지만[* 게다가 애초에 위연의 목적은 마속을 구하는 것이였으니 목적을 달성했지만 장합은 마속을 잡으려다 죽었으니 상황 자체도 촉이 유리했다. 마속군을 몰아넣던 장합군은 장군이 죽자 지휘의 혼란에 빠진 반면, 마속은 위연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열세에 몰리던 군을 정비해 순식간에 장합군을 역으로 몰아쳤다.] 위군은 거의 장합에 의존하고 있던 탓에 장합이 죽자 전열이 무너져 패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 '''[[왕쌍]]''' 가정에서 기병 5-600명을 이끌고 촉군의 보급을 방해하였지만 마속과의 경전 공부에서 힌트를 얻은 왕평의 계책[* 왕쌍의 기병술에 호응을 해주며 말을 지치게 만들고 왕쌍이 다시 돌아올때 여물을 뿌려 말의 기동을 막았다.]으로 전사하여 마속의 첫 킬마크가 된다. * '''[[곽회]]''' 위나라의 장수. 국경에서 촉한의 전쟁준비와 제갈량의 능력을 눈 앞에서 보고 있었기에 몇번이나 증원군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눈 앞에서 제갈량의 침공을 보게 된다. 상규성에 틀어박혀 방비를 굳힐 작정이었지만 장합이 가정의 마속을 뚫기 위한 원군을 청하자, 고민하다가 어차피 옹주를 구원하지 못하면 국경이 위태롭다는 생각에 1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다가 길을 막은 위연과 오의와 야전을 치렀으나, 오천이나 되는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촉군이 개발한 팔진도의 제물이 되어 패배하고 만다. 군법에 따른 중벌을 진작에 증원을 청한 것이 감안되어 면제받고, 위의 4로 병진에 참전해 3만 대군을 이끌고 촉을 공격, 마속과 강유의 군단 2만과 싸우며 우세를 점하지만 제갈량의 계책으로 [* 촉군의 진지를 점령해 사용했는데, 진지의 창고에는 천장 위쪽에 시간이 지나면 오물을 뿌리는 장치가 숨겨져있었다. 해당장치가 작동되자 위군이 넣어둔 식량에 오물이 뿌려져 상당량이 썩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에선 마속과 강유를 패퇴시킨다하더라도 더 이상의 진군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고 당연히 이 때를 노린 촉군의 맹공에 패퇴한다.] 순식간에 판이 뒤집혀 대패해 군이 괴멸당했고, 위연과 싸우던 장합과 조진의 군에 합류한다. 그러나 다른 전선에서도 제갈량이 사마의를 패퇴시키고 마속의 특공 작전으로 인해 장안이 위협받아 정상적인 군사 행동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러자 2번이나 우세한 병력으로도 패배한 것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후방에서 촉한군의 추격을 막아내다가 위연에 의해 사망한다. * '''[[학소]]''' 위의 난공불락 진창성의 성주이자 대체역사의 최대 피해자 중 한명. 원 역사에선 새로 튼튼한 성을 짓고 1000명의 병력으로 수만 대군도 막아낸 장수지만, 여기선 '''하필''' 미래인이었던 마속이 학소를 성 하나 막겠다고 무덤이나 도굴하는 놈이라고 욕하자[* 도굴은 정말 심각한 수준의 [[패드립]] + [[고인드립]]이다. 효렴이라고 해서 '''효도만 잘해도 관직에 추천받을 수 있었던''' 후한~삼국시대 기준 가치관으로는 당장 찢어 죽여도 아무 말 못할 중죄. 오히려 마속의 동료들이 '''도굴꾼이라니, 아무리 도발이라도 그렇지 그런 패드립은 좀...'''이라며 마속을 말린다] 속으로 당황하며 혹시라도 파묘행위가 들킬까봐 비석이라던가 증거들을 버렸는데, '''하필''' 이 행동이 오히려 눈에 띄어 백성들에게 꼬리를 잡혀 분노한 주민들의 궐기로 성문이 뚫리고 사망한다.[* 학소가 있던 진창성이 큰 성이 아니라서, 비석같은 큰 물체들을 버리는 것이 들키기 쉬운 환경이긴 했다.] 그나마 주민들의 궐기까지는 마속 측에서 이를 함정이라 오판해 내분을 진압할 시간을 벌어 진압을 잘해내고는 있었는데, 남문에 촉한의 주력군이 달려들면서도 '''하필''' 북문에 성동격서용 미끼로 일부 병사들을 보내 둔 상황이었고 이를 간파한 학소가 남문에 주력군을 두고 북문의 경계를 게을리 했는데 '''하필''' 북문에 간 그 일부의 촉한군에 머리 좋은 [[나헌]]이 있었고 그가 북문의 방비가 허술함을 간파하고 북문 병력 지휘관인 황습에게 북문을 넘어야 한다고 말해 '''하필''' 평소 마속의 등산질로 단련된 병력들이었던 군사들이 그냥 성벽을 암벽등반하듯 넘어서 성내로 진입해 버렸다. 일부라 해도 그 수가 800명이라 성 내 병력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니 마속의 돌입 이전에 제압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원 역사와 달리 진창성에 위군이 1천명이 늘어서 총 2000명 정도가 있었지만, 그래도 성 안에 적군이 800명이나 진입했으니 질 수밖에...] 성이 함락당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휘하 2천 병력이 전부 죽을 때까지 저항해 마속이 치를 떨게 만든다. 정말 수없는 불운이 겹쳐서 당한 셈. 주인공은 파묘행위 때문에 저주라도 받은 건가 하며 찜찜해하며 정중하게 장사지내준다. * '''[[학개(삼국지)|학개]]''' 학소의 아들. 아버지의 명령대로 도굴한 증거들을 버리려다가 들키고, 끝내는 진창성 주민들의 궐기에 아버지와 함께 항전하다 사망한다. * '''[[전예]]''' 위의 원로 무장. 오나라의 요동 진공 기후를 예측하고 당시 내륙에서 기다리는 계책을 세워 기다린다. 실제 역사에서는 대성공을 거둔 계책이었으나 역사를 알고 있는 마속이 일부러 그곳을 피해 가버렸고, 오히려 빈 배에다가 '님이 모른 척 해준 덕분에 편하게 갑니다. 촉빠 전예 장군 최고^^' 같은 편지를 잔뜩 실어서 보내 의심을 사게 만든다. 결국 의혹을 피할 수도 없게 된 전예는 마속의 반간계로 인해 자살하고 일가도 사마의에 의해 몰살당한다.[* 이때 적인 마속만이 자신의 진짜 의도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허탈해한다. 일가 건은 불쌍한 것이 그는 반년만 있다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으니 가족들이라도 그때까지 형을 미뤄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그대로 증명되었으나, 사마의는 조정의 체면을 위해서 그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고 고집해 결국은 죽여버렸다.] 사실상 헌제, 학소와 함께 대체역사의 최대 피해자 중 한명. * '''[[만총]]''' 위나라의 사로 진격에서 계한군에게 대패해 관중이 위험한 상황에 합비로 쳐들어온 손권을 무찔러 제갈량을 당황하게 한다. 때문에 형주의 육손은 마속과 짜고서 한달 이상을 전장에서 버텨야 했다. 이후로도 오나라를 경계하느라 대촉 전선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업도로 천도를 논할 당시 병이 깊어져서 은퇴했다고 나온다. * '''[[관구검]]''' 전예가 죽은 일로 마속을 잡아 죽이려 하지만 제갈량이 초원길로 보낸 요화에 의해 실패하고 2만 명의 군대도 패배하여 퇴각한다. 이후 오랜 기간 등장이 없다가 낙양 전선에서 재등장. 제갈탄과 함께 진태의 편을 들고, 장완의 지원군으로 인해 판이 완전히 기울자 혈전 끝에 겨우겨우 살아남아 도망친다. * '''[[진태]]''' 2차 북벌, 촉과의 3번째 전쟁에서 마속과 왕평이 장안 구원을 위해 도강하려는 것을 막자 3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맞서 싸우나 마속의 계책에 서로 장군멍군을 외치며[* 마속이 수비자 입장이라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특히 상류에서 배로 도강하려는 것처럼 짰을 때는 마속의 주력이 낚여서 그대로 왕평의 잔존 병력을 격파하고 도하에 성공할 뻔 했으나, 역풍항해를 연구하느라 배에 익숙해진 마속이 먼 발치에서 얼핏 보기만 하고도 가짜라는 걸 눈치채고 돌아오는 긴급히 복귀하는 바람에 성공 직전에 실패한다.] 시간이 끌리고 마속이 동관의 제갈량을 지원하러 간 이후에는 왕평의 철벽 방어를 뚫지 못하고[* 물론 진태도 유능한 장수인데다가 왕평의 병력이 겨우 5천명이라서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기는 했다.] 그사이 동관 대전을 승리한 마속이 돌아오는 바람에 패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장안 탈환전을 위한 전초전이기도 한 후방 확보와 촉군 약화를 노리고 병주에서 이민족들을 대거 토벌하기 위해 5만명의 군단을 이끌고 병주원정을 떠난다. 그리고 이민족 구출작전을 펼치는 마속을 방해하지만 현대과학의 지식을 이용한 마속에게 당하면서 결국 실패하고 상당한 손해만 보고 후퇴한다. 일단 병주의 친촉파 이민족들 대부분이 사라졌으니 후방의 안전이나 공격로는 확보되었지만, 촉군의 전력 약화는 실패했고, 병주 전투에서 교환비도 상당히 손해를 봤다. 자신은 패배했다고 여기지만, 연이은 패배가 군기에 좋지 않다고 여긴 위나라에 의해 승장으로 상을 받는다. 계한의 20만 대군이 침공하고 조상이 그에 맞설 20만 대군 사령관이 되자, 수도가 위태로운 판에도 정치판의 논리에 갇힌[* 위나라 최고의 군사는 사마의지만 촉한의 제갈량에게 대패한 경력이 있고 때마침 손권을 설득하기 위해 오나라로 나가 있어 제외되었다.] 위나라의 정치혼란에 탄식한다. 그래도 제갈탄, 문흠 등의 위나라 올스타들이 모였으므로 수비전이라면 피해없이 막아내리라 여겼지만 조상이 군사적인 식견이 부족해 진태처럼 경험많은 장수의 조언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사실이 제갈탄에게 들통나자, 다른 장수들도 앞다퉈서 조언이란 빌미로 위군의 진형을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한다. 그 결과 위나라군은 대전 경험이 없는 장완이 보기에도 개판 5분 전의 진형이 되어 계한이 치기 좋은 위치마다 최소한의 군사만 배치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만일 진태가 어떻게든 이를 수습하려 들었다면 희망이 있었지만 그랬다가 불리한 위치에 자기 군단이 끌려갈까 두려워 결국 입을 열지 않았고 위군은 대패한다. 그 후 천도에 관해 논할 때도 사마의를 경계해서 군사를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낙양의 방어를 맡기면서도 하후패와 등양을 남겨 자신을 감시하려고 하는 조상에게 분노하지만 말하지 못한다. 정변 이후 사마의의 저택에서 조상의 탁고를 언급하나 위의 이유로 조상에게 악감정이 있었기에 이내 조상일가를 멸하는데 찬동한다. 이후 계한의 5번째 공격에 선봉장으로 나서서 왕준의 선봉대를 역으로 몰아붙였으나, 왕평의 후방기습을 맞게 된다. 군을 물리고 낙양 남쪽 수비를 담당해 왕준, 장익, 양직의 맹공을 막는 기염을 토하지만 왕준의 도발에 넘어가 정면에서 성문을 열고 돌격했다가 작지않은 손해를 보고 복귀한다. 이후 책임을 묻는 사마의와 대립하지만 제갈탄과 문흠이 편을 들어준 덕에 무사히 넘어간다. 이후 궁성에서 낙양 시가전을 벌이던 중 업성의 예비병력도 전부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것을 두려워 한 사마의 탓에 실패한다. 결국 계한에서 장완이 이끄는 원군이 먼저 도착하면서 열세에 처하고 사마의를 원망하면서 다시금 원군을 부르자고 주장한다. 낙양이 함락될 때 사마의를 구해주기 위해 전군을 끌고 돌격해 사마의를 탈출시키지만 그 대가로 하후패와 마충에게 포위당하고 하후패에게 다시금 귀부를 권유받지만 결국 항전하기를 택한다. 진태는 권력보다는 순전히 나라에 충성할 뿐이었기에 위나라의 최대 인재이자 현재 위나라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사마의를 살린 것이지만, 그렇기는 해도 본인도 이미 사마의가 역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를 살리면 황실은 또 어찌 되겠냐며, 자신이 뭘 어찌 하는 것이 맞았던 거냐며 심란해하다 탈진해 병사들과 같이 허망하게 전사한다. 또한 아버지 진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정작 위나라에 충성하는 자신의 모습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자조하지만 결국 위나라를 향한 충성을 버리지 못했고 사마의는 변하지 않고 찬탈을 저지르면서 그의 죽음은 의미를 잃고 만다.[* 심지어 반 사마씨 파벌이던 장군들은 전쟁 이후 사마의에게 숙청당했다.] * '''[[비요]]''' 장합의 부장. 가정 전투에서 가장 먼저 마속에게 털려서인지 마속을 상대로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동관 대전에서 장합과 같이 일군을 맡아 분투했으나, 제갈량의 팔진도를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다. 장합이 죽고도 군을 수습했지만 위연의 죽음에 눈이 뒤집히다시피 한 마속과 강유의 맹공에 결국 밀려난다. * '''[[대릉]]''' 동관에 진출한 제갈량을 격퇴하기 위해 사마의가 정예 위군 10만명 중 5만 5천명을 데리고 나서자 남은 4만 5천명으로 이엄과 마충의 10만 촉군을 막아선다. 그러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사마의가 패전하고, 정병들이 사마의를 따라 대부분 빠진 위군으로선 이엄과 마충의 공세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패배해 군사를 수습하는 것에도 실패한다. 결국 방어선이 무너져서 장안까지 촉군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패전이 확실시되자 하후무에게 퇴각을 결정할 것을 떠넘긴다. * '''[[유초]]''' 농서군 태수로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에도 한달을 버티자고 했지만 가정의 역사 개변으로 촉군의 옹량 장악이 확실해지면서 공포를 견디다 못한 농서 주민들의 반란으로 전사한다. 제갈량은 그 시신을 수습해 장합에게 건네준다. * '''[[하후현]]''' 당시 조위의 2대 명사로 유명하다. 조상의 측근이지만 학문과 군략 모두 최고라기엔 하나가 모자란 성격. * '''[[문흠]]''' 동관대전에서 진태와 같이 도강을 시도했지만 마속와 왕평에게 결국 밀려난다. 장완의 북벌 당시 마충의 공격을 막는데 성공하지만 촉한의 공세에 위군의 진영이 무너지자 결국 후퇴한다. * '''[[왕경]]''' 장완의 북벌에서 다른 위의 장수들이 자신들에 유리한 진형을 짜게 압력을 넣는 와중에 착한 성격 때문에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 결과 최전방에서 지원없이 세 배에 달하는 촉한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으며 후퇴한다. * '''[[제갈탄]]''' 조위의 장군. 당시 조위의 2대 명사로 유명하다. 부하들을 아끼는 덕장으로 포상에 더해 사재까지 털어서 병사들을 도와주기에 병사들의 충성도와 전투력이 매우 높다고 한다. 조상의 하동군 방어전에 종군했으나, 조상의 능력과 상황을 깨닫고는 자신이 공을 세우기 위해서 조상을 부추겨 대형을 꼬아버려서 20만 대군이 허무히 붕괴하는데 일조한다. 마속의 북벌에서는 위의 선봉장으로 죽림칠현을 데려와 나헌의 기를 죽이고, 등애에게 측면을 기습시켜 우세를 점하지만 황숭의 원군이 도착해 실패하고 낙양성에서 다시 맞붙는다. 이후 군의에서 진태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사마의에게 맞서서 그를 비호한다. 금용성을 지키다가 수세에 몰리자 귀부를 거부[* 권하는 왕평이 제갈량하고 친척이라고 하자 본인 스스로가 제갈량같은 역적하고 같은 가문인게 수치스럽다고 외친다.]하고 창으로 자결한다. 사망 직후 충의에 경의를 표한 왕평이 따로 관을 마련해 시신을 수습해준다. * '''[[등애]]''' 장완의 북벌 때 왕경의 부장으로 압도적인 촉한군의 공격을 어느정도 막아내나 워낙 수와 질에 차이가 많아 결국 후퇴한다. 제하론을 올려 운하건설의 계기를 마련한다. 5차 북벌 당시에 제갈탄의 부장으로 동행해 절벽을 기어올라 넘어서 나헌의 군대를 기습했지만 황숭의 반격에 당해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한다. 낙양 전선에서는 왕평과 강유를 상대로 북망산의 수비를 맡지만 마속이 만든 포원기환과 청강족 병사들의 힘을 십분 이용한 왕평의 공격으로 시간벌이 이상은 실패한다. 낙양대전에서 조위가 참패했지만 어찌어찌 살아 돌아간다. 등산가라는 점에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마속과 라이벌 기믹이 있다. 다만 본작에서는 별로 강조되지는 않았고 낙양이 무너질 때 간신히 도망치는 것으로 등장 종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